포르쉐 숨통 끊을 뻔한 928, 좋은 차가 꼭 성공하는 건 아니다

2019-07-31 14:53:01

현대적인 FR 스포츠카의 표준을 제시한 포르쉐 928 (2)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1부에서 이어집니다)

◆ 스포츠카 최초의 카 오브 더 이어

1977년 2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매된 928은 모두가 기다리던 차였다. 이미 924가 포르쉐 FR로 선을 보인 지 2년이 지났지만, 거기에 담긴 알맹이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924는 폭스바겐이 자신의 차로 거의 다 만들었다가 유류파동으로 스포츠카 시장이 축소되자 포기한 차였다. 폭스바겐의 영향력과 부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924에 비하면, 928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차였다.



새로운 기술과 사상으로 꽉 채워진 차는 결국 1978년 유럽 카 오브 더 이어(올해의 차, Car Of The Year/이하 COTY)까지 오른다. 스포츠카로서는 최초였다. 백지부터 모든 것을 새로 만드느라 걸린 시간만 6년. 이걸 인정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포르쉐는 수상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무렵 포르쉐는 외부에는 말 못할 내홍을 겪고 있었다. 928은 물론 924/944까지, 위 아래로 FR트랜스액슬 스포츠카 라인업을 완성한 푸어만은 예정대로 911을 삭제하는 작업에 착수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껏 가만히 있던 페리 포르쉐가 움직인다.

911의 아버지. 페리 포르쉐에게 붙는 이명이다. 356은 물론 911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서 그는 이미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이상의 존재가 되어있었다. 이미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그는 일생이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긍지로 여겼다. 평생을 아버지라면 했을 합리적 판단을 이어가는데 집중했노라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였으니. 전후 필요에 따라 만든 가족회사들을 통합한 뒤 기업 공개를 했고, 가족기업 시절의 잔재를 없애려 모든 인척들을 물러나도록 했을 정도였다. 일을 잘해도 예외는 없었다. 창업주의 외손자였으며 페리의 조카였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도 ‘퇴사’ 당해 폭스바겐으로 갔다. 훗날 폭스바겐 그룹의 수장이 되어 세계 자동차공업을 좌지우지하게 될 회장님도 이 때는 외삼촌이 까라면 까야 하는 조카녀석일 뿐이었다.



이런 변화에 가족 모두가 순순히 따라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랬을 리가 있나.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출가한 여동생이자 회사의 재무 담당자였던 ‘루이제 피에히’였다. 창업자의 사후 회사 안팎으로 지배력을 확대하던 이들 ‘피에히’ 가문은 하필이면 법률가로 명성이 높았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가족 싸움을 벌인 끝에 양쪽 가문 누구도 사장을 맡지 않는 것으로 지분 정리가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뽑은 외부인사가 바로 푸어만이다.

가족배제의 원칙은 페리 본인도 예외가 없었다. 감독 이사회 의장으로 한발 물러선 그는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 함께 356을 만들며 동고동락했던 푸어만을 다시 끌어온 것은 바로 페리였다. 자신이 보지 못한 방향을 포착하고, 새로운 길로 회사를 이끌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했다. 그게 911을 없앤다는 결정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911은, 페리 포르쉐와 그의 아버지가 바라던 RR스포츠카의 이상을 담아낸 차였다. 911이 바로 포르쉐였다. 어째서 포르쉐를 지우는 것이 포르쉐의 나아갈 길이 되어야 하는가?

911과 928의 향방을 정하는 사내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페리는 911을 곧바로 단종시키겠다는 푸어만의 계획을 한마디로 뭉개 버린다.

“고객이 결정하면 될 문제입니다.”

푸어만의 불안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과거를 지우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911을 내버려 두는 것은 그의 방침과 정반대되는 일이었지만, 상대는 페리 포르쉐다. 푸어만의 권력은 페리가 허락했기에 기능했다. 봉급쟁이 사장의 권력 따위, 이사회 의장이자 대주주가 고개를 흔들면 바로 흔들려버린다. 푸어만과 페리의 반목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 928, 잘 안 팔린다.

911을 바로 단종하려는 시도는 중단되지만, 페리의 말 대로 ‘고객’이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푸어만의 의지에 무게가 실리기 위해서는 928이 판매로 리드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그게 잘 안되었다는 것이다.

928은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감히 RR을 포기할 셈이냐며 성질을 부리는 911 마니아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911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928은 포르쉐의 기함자리를 목표로 만든 차였다. 최신의 기술과 전용부품을 아낌없이 투입한 차는 고급 쿠페 시장에서도 가장 높은 가격대에 속했다. 하지만 새 차가 911의 후속인지, 911의 상급모델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내부 갈등은 928의 시장입지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이러는 사이에, 928은 원래 ‘플래그십’ 이였던 911의 연장선상에서 인식되어 버린다. 신형 911을 기대하고 매장을 찾은 고객은 911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보고 발길을 돌리거나, ‘그냥’ 911을 샀다. 엔트리 급 모델 924마저 판매량이 시원치 않았다. 주행성능은 높았지만, 고객은 폭스바겐의 부품으로 가득 찬 차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푸어만의 입지는 막말로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1년 911(930)의 단종을 잠정적으로 결정한 뒤 RR차종의 후속개발을 중단시킨다. 1980년, 포르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다. 주력시장 미국의 판매량은 전성기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상황도 명분도, 더 이상 푸어만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실패의 책임을 짊어진 사장은 10년동안 일했던 회사에 별 말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새로 영입된 사장, 피터 슈츠(Peter Schutz)가 맨 처음 한 일은 전임자의 고집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911 포기로 인해 바닥에 떨어진 개발자들의 사기를 신모델 911 카레라(Carrera)의 개발로 돌려놓았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품질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했다. 928에도 손질을 가했다. 배기량이 늘어났고, 높아진 출력에 맞추어 브레이크와 서스펜션도 바꿨다.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만큼, 차의 성능은 계속 높아졌다. 알려진 사양만 10종이 넘었고, 배기 기준이 틀렸던 북미와 기타 사양까지 나뉘면 엄청난 세부 사양이 존재했다. 어떻게든 차를 팔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장장 18년 동안이나, 포르쉐는 928을 포기하지 못했다.



◆ FR스포츠카의 미래

928로 진행하려던 모터스포츠 활동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베돌(Veedol) 내구 레이스나 미국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928은 레이스를 주도했지만 원래 목표인 투어링카 유럽 선수권에는 나가 보지도 못했다. 연간 5천 대 제조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928은 포르쉐의 단일 차량 형식으로는 가장 오래 생산됐다.(1977년~1995년) 포르쉐 930의 15년(1975년~1989년)보다 길었으며, 356의 18년(1948년~1965년)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장수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 긴 기간 판매량은 고작 6만1천대에 머물렀다. 이 차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들인 노력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은 숫자였다. 1995년 928은 GTS를 마지막으로 후속모델 없이 단종된다. 진작 생명이 끝난 차였지만, 이게 계속 라인업에 남아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달리 팔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928에 들어간 막대한 투자와 판매부실은 결국 포르쉐가 1980~90년대 겪게 될 고난의 단초가 된다. 1990년대 포르쉐는 정말로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928이 선보인 기술은 전세계의 FR 차 만들기로 퍼져 나갔다. 트랜스액슬이나 4WS,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모두가 뜯어보고, 감탄한 뒤, 자신의 차에 적용했다. 에어로 다이나믹스와 인테리어, 일체형 범퍼는 이후 자동차 디자인의 방향 자체를 틀어 버렸다.



◆ FR쿠페는 부활하겠지만

망하기 일보직전, 2시터 카브리올레 시장의 성장을 보고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낸 차 ‘박스터’가 대성공하며 포르쉐는 겨우 숨을 돌린다. 이어서 나온 996과 카이엔이 연달아 히트, 이제는 어엿한 종합 자동차 제조사가 된다. 돈과 플랫폼을 모두 갖춘 포르쉐에게, FR쿠페 하나 만드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928 이후, 포르쉐의 FR쿠페는 단 한 번도 시판되지 않았다. 한 때 휠베이스를 줄인 파나메라 뮬(mule/시험차)이 돌아다니던 것을 보면, 포르쉐도 이걸 하고 싶어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확히는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것이겠지만.

자동차 브랜드 ‘제국’ 폭스바겐 그룹의 일원으로서, 포르쉐는 그룹사의 다른 브랜드와 판매간섭을 일으키지 않도록 내부조정을 받는다. 벤틀리 컨티넨탈 쿠페 시장을 넘보지 마라는 논리는, 그러면 벤테이가는 도대체 뭐냐는 내부의 공분에 힘이 빠진 상태다. 언제가 되든, 포르쉐가 만든 FR쿠페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차가 928이라는 이름을 쓸 가능성은 없다. 911이 여전히 포르쉐의 기함역할을 하고 있는 한, 911을 죽이려 만든 이름을 끄집어 내지는 않을 테니.

FR스포츠카로서, 928이 가고자 한 방향은 명확했으며, 그 기술은 후대의 스포츠카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에게는 선택받지 못했으며, 회사를 재정파탄으로 몰고 갔다.

좋은 차와 성공한 차는 전혀 다를 수 있다. 928이 바로 그 예다.

@IMG10@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사진=포르쉐AG/자동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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