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동차 제국을 꿈꾸는 남자, 카를로스 타바레스

2019-12-26 10:14:06

푸조시트로엥과 피아트크라이슬러 합병에 기대감을 키운 사람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지없이 올해도 다사다난했으며 자동차 업계 또한 그랬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폭스바겐그룹 전 회장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죽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폭스바겐 그룹을 최고의 자동차 제국으로 만든 주인공으로 명실상부 독일 자동차 업계의 황제였다. 그런 그가 떠난 빈자리는 커 보였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피에히의 길을 가려는 이가 등장했다. 바로 카를로스 타바레스다.



◆ 푸조시트로엥과 피아트크라이슬러 하나가 되다

연말에 터진 프랑스 자동차 그룹 PSA(푸조시트로엥)와 이탈리아, 미국 연합 그룹인 FCA(피아트크라이슬러)의 합병 소식은 자동차 업계에서 날아온 올해 가장 큰 소식이었다. 1년 이상의 합병 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주주와 경영진들 모두 찬성하고 있는 만큼 연간 870만대를 생산하는 두 그룹 살림을 합치는 일은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먼저 손을 잡기로 한 쪽은 PSA의 라이벌이었던 르노였다. 합쳐지면 닛산, 미쓰비시를 포함, 세계 3위 이내 거대 그룹이 태어나는 일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르노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보인 일종의 간섭에 FCA의 회장 존 엘칸(지아니 아녤리 전 회장의 외손주)은 합병 계획을 바로 철회해버렸다.

닛산의 비협조적 태도와 르노 내부 조율 실패로 결국 재시도도 제대로 못 한 채 합병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피아트크라이슬러를 향한 위기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알파로메오와 마세라티 등의 저조한 실적 등이 더해지며 일부 공장 폐쇄 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때 PSA 그룹을 이끄는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FCA와 손을 잡기로 했다.



◆ 영원한 르노맨일 줄 알았던 카를로스 타바레스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합병 성사로 인해 최근 독일 자동차 경제지 아우토모빌보헤의 ‘2019년 업계 최고의 인물’로 선정됐다. 별 영향가도 없는(?) 피아트크라이슬러와의 합병이라며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카를로스 타바레스라면 무언가 계획이 있고, 긍정적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며 기대하는 이들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원래 이 포루투갈인은 르노에서 시운전 엔지니어로 출발해 르노와 닛산에서만 일해왔다. 메간 2의 개발을 책임지기도 하는 등, 입사 30년 만에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르노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두 번씩이나 방문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카를로스 곤 회장의 장기 지배가 구체화되면서 타바레스는 르노에 사표를 던졌다. 자동차 회사의 CEO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 PSA와 오펠 모두를 살린 회생 전문가

2014년 PSA CEO가 된 그는 적자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어려움을 겪던 PSA를 되살리기 위해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들을 단행했다. 안 팔리는 모델은 단종하는 등, 효율성을 강조하며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PSA를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는 GM으로부터 오펠 인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오펠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당시 독일에서는 자국에 근거를 둔 오펠의 여러 공장이 문을 닫고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그러나 급격한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독일 정부와 오펠을 달랬다. 프랑스 쪽은 그쪽대로 오펠 때문에 푸조나 시트로엥까지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성공했다. 인수 후 2년째가 되면서 20년 적자의 오펠이 마술처럼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흑자로 돌아선 데에는 예전부터 준비돼 있던 2종의 SUV 덕이 컸다. 하지만 단지 신차만으로 오펠을 되살린 것은 아니다. 효율성을 강조하며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경영자였다. 이렇게 오펠까지 살린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회생 전문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적 브랜드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한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야심은 여기가 끝이 아닐 수도 있다.



◆ 재규어랜드로버까지?

피아트크라이슬러와의 합병 전,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재규어랜드로버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인도 타타 측에서 팔지 않겠다고 밝히며 인수 얘기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긴 했지만 언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는 재규어랜드로버까지 보듬어 안을 것이다. 피아트크라이슬러까지 회복된다면 재규어랜드로버 인수는 오히려 더 쉽게 이뤄질지도 모른다.

그는 얼핏 평범해 보인다. 거대 자동차 그룹을 이끄는 CEO답지 않게 소탈한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20대부터 대단한 스피드광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레이서로 많은 시간을 트랙에서 보내고 있다. 괜찮은 드라이버이자 엔지니어이며, 르노와 닛산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경영을 배운 경영 전문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알고, 위험을 겁내지 않는 등, 실천을 통해 카리스마가 뭔지 보여줬다. 그가 던진 승부수가 어떻게 열매 맺을지 궁금하다. 그의 질주는 또 어디까지 계속될지도 궁금하다. 새로운 자동차 제국을 꿈꾸는 한 남자의 여정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자 한다.

* 추신 : 그동안 <이완의 독한이야기>를 아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자동차 전문가칼럼 코너가 올해를 끝으로 폐지됨에 따라 저의 글도 오늘까지입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애정을 갖고 응원과 비판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모습으로 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자동차 소식 계속 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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